을미보 개요

 

을미보(乙未譜)가 이루어진 71年 다음인 1655(孝宗 六 乙未)년 가을에 이루어졌으므로 을미보(乙未譜)라고 교서랑공파 대년(校書郎公派 大年)의 증손(曾孫)인 참판 추천공 양필(參判 秋川公 良弼)이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부임할 때 양파공 태화(陽坡公 太和)의 수보(修譜)하자는 부탁을 받아들여서 기우자공 비(騎牛子公 秠)의 칠대손(七代孫)인 운계공 홍석(雲溪公 弘錫)과 그 조카 음연공 회(陰淵公 澮)와 외손(外孫)인 송희업(宋熙業)으로 더불어 3년을 노고하여 이해에 이루었다.

 

이 족보(族譜)는 교서랑공 보(校書郎公 輔)와 첨사공 필(詹事公 弼)의 자손(子孫)을 중심(中心)으로 실계(失系)한 대호군공 인파(大護軍公 絪派)를 별편(別編)하여 3파(三派)가 合 상하권(上下卷)으로 편집하니 첫 대동보(大同譜)이다. 문안공 묘지(文安公 墓誌)가 처음 실렸다.

 

내용은 을유보의 옛 서문(序文)과 추천공(秋川公)의 발문(跋文)이 있는 목판본(木版本)으로서 책판(冊版)의 차례는 천자문(千字文)의 글자순에 따라 이루어진 자손(子孫)의 계대(系代)를 밝힌 153板과 명공(名公)의 사적(事蹟)과 비문(碑文)과 행장(行狀)이 60板이며 서(序)와 발(跋)이 8板이다.

 

판본(板本)은 성주(星州)의 기우자공 이로재(騎牛子公 履露齋)에 간수했으므로 시강원(侍講院)의 책판(冊板)에 성주(星州)의 동래정씨 족보 책판이 있는데 일질(一帙)을 인출(印出)하자면 종이 80束 10張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판본(板本)이 뒷날 칠곡으로 옮겨진다.

 

 

 족보 간행내역

 

▲ 을미보(1655년) 원본

 

▲ 을미보(1655년) 목판본

 

▲ 을미보 복원본

 

 

▲ 병신보(1716년) 영인본

 

▲ 병신보 목판본

 

▲ 기미대동보(1919년) 영인본1~8권

 

▲ 기미대동보(1919년) 영인본9~16권

 

 

 

사진 준비중

 

▲ 갑술일통보(1934년)

 

 

 

사진 준비중

 

▲ 갑술일통보(1934년)

 

▲ 기미대동보(1919년) 영인본1~8권

 

▲ 기미대동보(1919년) 영인본9~16권

 

▲ 정유보(2017년)